(주)안양광역신문사

멈춤의 미학(美學)

<유화웅 칼럼>

2018-05-14 오전 12:24:00

유화웅 시인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굿파트너즈 이사장

현대 사회는 질주(疾走)하는 사회입니다.

교통수단도 걷던 것에서 자동차로 달리고 있습니다. 통신수단 또한 손으로 써서 우체통에 넣어 전달하던 방식이 이-메일, SNS 등의 광속 수단으로 변했습니다.

속도도 느린 것은 외면당하고 고속(高速)에서 초고속(超高速) 그리고 광속(光速)이어야만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속도에 밀리면 죽을 것처럼 살며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달리는 인생 대열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멈추고 있으면 인생이 실패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과정이 속도전(速度戰)이었습니다.

한 세대(世代)안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를 다 겪게 되고 산업화와 민주화도 이루어 낸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치체제도 프랑스는 제 1공화국에서 제 5공화국으로 가는데 200년이 걸렸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제 1공화국에서 제 6공화국까지 1세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땀 닦을 겨를 없이 달리면서 이루어 낸 결과들입니다.

우리 세대의 구분이 없이 달리면서 생각하고 달리면서 일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상 생활이 무척이나 편리해졌지만 평안하지 못하고 불안 속에 사는 정서불안의 증세가 일반화되었습니다.

돈은 벌어서 쓰고 있지만 가지는 것은 적게만 느껴지고, 많은 것을 샀지만 누리지 못하고 버릴 것만 집안에 가득하기도 합니다.

사업장 사무실 등 온통 사회 전체가 경쟁으로 치닫다 보니 동료와 이웃사이에 만남도 적고 정()도 메말라가고 금속성의 짜증 섞인 소리들로 대화 아닌 대화를 합니다.

지식은 넘쳐나는데 비합리적으로 사용되고, 전문가들이 시시각각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만 문제점만 들춰 낼 뿐 해결책은 없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지만 들어가는 순간부터 TV나 컴퓨터 속에 빠져 들어가 자기만의 동굴에서 문을 닫고 다음 날까지 지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며 작은 목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쳐 봅니다.

모든 것이 가득 채워져야 행복인 것이라 착각하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달리고 있지만 욕심이라는 늪으로 빠져들어 가면 헤엄쳐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몸도 마음도 지쳐 더 이상 바로 설 수 없고 걷기조차 힘든 지경이 됩니다.

멈춤의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멈추면 보이고, 듣고, 만지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 현대인이 안타깝습니다.

()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들판이나 강이나 바다나 항상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눈을 돌려보면 숲 속의 향기와 노래에 심취할 수 있고 강가나 바닷가에서 흐르는 시냇물과 서로의 모양을 다르게 하며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에서 마음 속의 긴장된 끈을 느슨하게 풀어 볼 수가 있습니다.

조금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생활이 불편하더라도 멈춰 서서 멈춰 있는 자연들과 함께하면 그 부족이 아무것도 아니고 불편이 도리어 편리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멈춰 있는 대자연은 아무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품습니다. 바위 한 덩어리 한 그루의 나무나 한 송이 풀이나 꽃송이들이 달리는 인생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멈춰 있는 것은 대자연뿐만이 아닙니다. 전시회장에 걸려있는 그림이나 사진이나 공예품도 달리는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더구나 기계로 인해 사람이 작아지며 공감의 능력이 상실된 사람들에게 자기를 찾는 최선의 방법은 멈춤을 알고 멈춘 존재 앞에 서서 멈춘 존재와 공감하며 그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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