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정권의 전방위 탄압에도 권력형 범죄를 자꾸 파헤치자 집권 세력이 들고나온 묘수(?)다. 윤 총장은 즉각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반발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 3월 사퇴했다. 그러자 검수완박 소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고 중수청 신설도 없던 일이 됐다. ‘수사·기소 분리에 의한 검찰 정상화’는 허울일 뿐이고 실은 정권이 아픈 곳을 후벼 파는 검찰에 재갈을 물리려는 속셈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 검수완박이 느닷없이 무덤에서 다시 기어나와 정국을 온통 휘저은 이유는 뻔하다. 새 정권이 5월 10일 출범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온전치 못할까 봐 두려워서다. 누더기로 급조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5월 3일 문 정권의 마지막 국무회의 때 공포함으로써 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원천 봉쇄한다는 구상이다. 주지하다시피 문 정권은 원전 경제성 조작과 울산시장선거 개입 같은 권력형 범죄의 피의자이고, 이 고문은 대장동게이트와 성남FC 후원금 유용 등의 초대형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검수완박의 표적이 지난번의 ‘윤 들어내기’에서 이번에는 ‘문·이 일병 구하기’로 바뀌었을 뿐 불순하기는 매한가지란 얘기다. 박범계 법무장관이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문 대통령 수사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한 게 그 증거다. 게다가 “(민주당 인사가)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며 법안에 찬성하라고 했다”는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폭로까지 나왔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주당은 법조 3륜(판사·검사·변호사)과 야당, 학계는 물론 친정권 성향인 민변과 참여연대조차 반대하는데도 온갖 변칙과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법안을 졸속 처리하려다 ‘개판’이란 치욕적인 말까지 들었다. 그것도 참여연대 출신 변호사한테. 민주당은 양 의원의 상임위를 기재위에서 법사위로 옮기는 사보임(사임+보임)을 멋대로 해치웠다. 이견이 첨예한 안건을 다루는 상임위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 3대 3 동수로 구성되지만 양 의원이 야당 몫 한 자리를 차지하면 의결정족수(4석)를 채워 숙의기간(90일)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국회법을 우롱하려던 집권당의 꼼수는 엉뚱한 곳에서 틀어졌다. 양 의원이 ‘소신’을 내세워 동조를 거부하는 돌발변수가 불거진 것이다. 민주당이 부랴부랴 소속 의원 1명을 탈당시켜 조정위를 새로 구성했으나 후폭풍이 거셌다. 야권과 법조계 등은 “사사오입 개헌에 버금가는 반민주적 행태”, “민주주의 테러”, “입법 농단” 등의 격한 비난을 퍼부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패가망신의 지름길”, “국민 시선이 두렵다” 등의 볼멘소리가 새어 나왔다. 양홍석 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은 “국회가 완전 개판 되는구나”라고 개탄했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초선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위헌 소지를 지적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국회 논의가 우습나”고 윽박질렀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권위를 대놓고 짓밟은 초선 의원의 ‘망발’에서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이 짙게 풍긴다. 검찰 간부가 자신에게 보낸 “국민이 우습나”라는 문자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김 의원 스스로 공개한 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법안 발의자 상당수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란 사실이야말로 국회를 ‘개판’으로 희화화하는 요인이다. 도둑이 검사에게 포승줄을 묶는 ‘셀프방탄법’이란 비아냥이 쏟아지는 이유다.
검수완박 법안이 민주당 의원 172명 전원의 명의로 발의된 것도 딱하다. 민주당은 ‘꼼수 사보임’과 ‘위장 탈당’ 등의 자충수에 당 안팎의 비난이 빗발치자 박 의장을 붙잡고 퇴로를 겨우 찾았지만 걸핏하면 폭주하는 입법 독재에 국민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거대 여당이 국민을 우습게 보는 작태는 당장 불식돼야 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닥친 6·1 지방선거가 첫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