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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도 한때는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1-11-12 오후 1:59:46  684
- File 1 : 202111121406.jpg  (47 KB), Download : 64

 

 

 

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이완용은 요즈음 유행어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몰락한 선비 집안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생부 이호석은 이완용을 11살 때 먼 일가인 당시 판중추부사 이호준에게 양자로 보냈습니다. 그 곳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13세 때 당시 명문가 조병익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25세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1886년 규장각의 시교로 근무하다가 궁중의 경서와 사적(史籍)을 관리하고 문서를 정리하며 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홍문관의 6품 수찬직에 올랐습니다. 고종과 가까이 지내면서 민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세력가의 편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거드럭거림)의 위세를 발휘하며 갑신정변의 잔당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고종 231885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 현대식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은 미국인을 교사로 초빙하여 영재들을 뽑아서 가르쳤는데 이완용은 1887년에 입학하여 근대 서구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완용은 우리나라 최초 미국 주재 공사단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직책은 주미참찬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근무하였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의 독립사상과 근대 문명의 발달 모습을 체득하면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배웠습니다.

1888년 임시대리공사로 재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890년에 귀국하여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의 1인자가 되었고 친미파로 활약을 했습니다.

그 후 벼슬이 승승장구하여 이조참판 한성부 좌윤 공조참판 외무협판을 두루 거쳐 1895년 친미, 친러 정책을 표방한 박정양 내각이 들어서자 학부대신이 되었습니다. 1896년 고종을 러시아 공관으로 피난시킨 아관파천의 공을 인정받아 외부, 학부대신, 농상공부 서리와 군부대신 겸 경무사(지금의 경찰청장)5개 직책을 다 맡아 쥔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권력자가 된 이완용은 또 다른 얼굴로 변신을 합니다.

18967월부터 1898년 초까지 독립협회에서 회장직까지 맡게 됩니다.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자주 독립과 신정치운동을 부르짖습니다. 고종의 환궁 후 친러 세력에 밀려 18979월 평안남도 관찰사, 전라북도 관찰사 등 외직으로 가게 되었고 독립협회를 떠났습니다. 전북관찰사 재직시에는 직무태만, 거액의 백성의 재물을 착복하여 관찰사직에서 파면당할 뻔도 했습니다.

이완용은 러일전쟁을 기회로 다시 변신을 합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친일행각이 드러나면서 학부대신이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영원한 스승으로 떠 받들며 을사늑약을 체결하는데 우리나라 대신들을 위협하여 조약을 체결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을사늑약 체결의 공로를 인정받아 1907년 의정부 참정대신, 농상공부 대신서리, 광산 사무국 총재까지 겸임하다가 매국 내각 수반으로 총리대신 자리에 오릅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 을사5적이 되었고 1907년 정미 7조약 체결로 정미7적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1910년 국권을 일본에게 완전히 넘기는 경술9적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 1등 욱일대수장, 금척대수장, 한국 병합기념장, 사망 후에는 대후위 국화 대수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급이 되었습니다.

그가 죽자 조선 총독 사이토 등 50여명의 장례위원과 1,3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3천평짜리 저택이 있던 옥인동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장례 행렬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 최고의 지관을 동원해 명당이라고 지정한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묘를 파서 화장을 해서 개울에 뿌려졌고 그의 관 뚜껑은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5만원에 매입했다고 합니다. 관에 쓰인 벼슬명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정2위 대훈위 후작 우봉 이공지구(朝鮮總督府 中樞院副議長 正二位 大勳位 侯爵 牛峯 李公之柩)라고 썼지만 지금은 매국노또는 역적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이름 완전할 완(), 쓸 용(). 어디에 완전하게 쓰임을 받았는지 역사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와 국민을 힘들게 하는 이완용은 어느 시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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